본문 바로가기

소식/일학 소식

[위기 고립 청년이야기6]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저,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⑫ 탈학교 ‘청소년활동가’ 현아

 

이정현(일하는학교 사무국장)

2016.11.15

 

흔들리는 청년, 현아

 

“이게 다 술 때문이죠 뭐. 불면증이 심해서 술을 안 먹으면 잠을 못자거든요. 그런데 술을 먹으면 다음날 제 때 출근을 못하고.”

 

현아는 2주일 넘게 출근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생활리듬이 깨져서 여러 차례 지각과 결근을 하다가 아예 출근을 하지 않는 중이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주변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자괴감 속에서 현아는 괴로워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런 상황을 몇 차례나 반복해왔다는 사실이 현아를 더 힘들게 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출근하라는 연락이 계속오고 있지만, 현아는 계속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스물여섯 살 청년 현아는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일하는, 그 자신의 표현을 따르자면 ‘청소년활동가’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에만 머무는 ‘은둔형외톨이’ 청소년들을 만나고, 인문학이나 미디어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현아가 하는 일이다.

 

현아가 이 일을 하게 된 건, 현아 자신이 ‘학교밖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에 다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10대를 보냈다. 빈곤, 부모의 이혼과 방임, 성폭력… 한국사회의 청소년+여성+빈민이 겪을법한 일들을 이미 10대에 대부분 경험했다.

 

스무 살 무렵 자신이 다녔던 대안학교의 제안으로, 학교밖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자신과 같이 힘들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사이버대학에 진학해서 심리학과 청소년상담에 대한 공부도 병행했다.

 

일종의 ‘인턴’과 비슷한 형태로 일을 시작한 지 5년째, 현아는 여전히 이 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 끊임없이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할까?’ ‘잘해낼 수 있을까?’ 의심한다.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현아는 스스로 진단한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힘들게, 진짜 좀… 없이 자라서 그런지, 자신감이나 이런 게 없어요…. 일이 많아지면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이걸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계속 두렵기도 하고.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거 같아요.”

 

“모르겠어요. 뭔가 되게 애매한 게… 나는 여기서 선생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느낌? 제가 이 학교 출신이니까 저를 예전처럼 학생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니까 뭔가 계속 인정도 못 받는 느낌이기도 하고, 계속 제대로 된 성과도 내지 못하는 것 같고. 그래서 애매해요. 좀 약간 학생 같은 짓을 좀 해도 그냥 좀 넘어가 주시고 하는 게 있어서 좋을 때도 있긴 하지만.”

 

현아는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는 우울과 낮은 자존감의 원인을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찾았다. 다섯 살에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 그리고 엄마가 떠난 후에도 자신을 돌보지 않은 아빠에게서.

 

엄마가 떠나던 날

 

“엄마가 떠나던 순간이 또렷이 기억나요. 제가 다섯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던 날이.”

 

현아는 엄마가 떠났던, 20년이 넘게 지난 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저는 컴퓨터 의자에 앉아서 뱅글뱅글 돌면서 놀고 있었어요. 엄마가 방에서 할머니랑 이야기하고 나오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싸기 시작했어요. (…) 엄마가 짐을 다 싸고 저를 불렀어요. 제가 착한 일을 하거나 좌약 넣으면 상처럼 주는 알사탕이 있었는데, 과일모양도 있고. 맨날 그게 너무 먹고 싶었는데, 엄마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줬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백 밤 자고 돌아온다고 하면서 그 알사탕을 입에 넣어줬어요. (…) 그러고 나서 엄마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데… 엄마가 울고 있었어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사탕을 먹고. 할머니는 제 뒤에서 엄마에게 욕을 했어요. 무슨 년, 무슨 년. 천하에 나쁜 년. 엄마는 울면서도 뒤를 안쳐다봤어요 저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따라서 울었어요. 엄마 가지 말라고. 그런데 엄마는 저를 한번 안아주고는 집을 나갔어요.”

 

엄마가 떠난 뒤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현아와 동생을 키웠다. 아빠가 있었지만,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현아는 아빠에게서 도움을 기대하기보다는 짐이 되지 않기만을 바랬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는 거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노릇을 하셨어요. 아빠는 저희가 성장하는데 한 게 거의 없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아빠랑 같이 살 때도 아빠는 집에 거의 안 들어왔어요. 술 먹고 들어와서 자고 나가거나, 여자들 데려와서 살다가 나가거나. 밖에서 다른 여자들이랑 동거하고. 가끔 들어오면 할아버지랑 싸우고 나가고.”

 

“제가 아빠하고만 산거는 2,3년밖에 안돼요. 큰고모가 집을 마련해줘서 아빠가 큰 마음먹고 저랑 동생이랑 같이 산건데… 평생 같이 안 살던 아빠가 다 큰 딸들하고 같이 산다는 게 힘들어요. 저랑 동생이랑 아빠랑 다 성격이 세니까. 계속 부닥쳤죠.”

 

“아빠는 자기 규칙을 안 따라오면 화가 나는 사람이에요. 화가 나면 눈이 잘 뒤집히는 사람이라, 뭐랄까 정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거 같아요. 내 말을 듣게 만들어야 한다, 굴복시켜야 한다는 생각. 식칼을 여기까지 들이민다던가 가스불을 켠 다음에 다 죽여버리겠다고 한다던가 옥상에 데려가서 다 같이 죽자고 한다던가. 나 혼자 죽어봐야 니네만 남는다고. 그때 저는 생각했죠. ‘그냥 너 혼자 죽어.’ 그렇게까지라도 해서 저한테 잘못했다는 소리 듣고 싶은 거죠. 몇 번이나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다가, 결국에는 어느 날 아빠가 화가 나서, 저희를 쫓아냈어요. 동생이 반 죽을 때까지 맞고 나서 직접 짐을 밖으로 옮겼죠.”

 

그런 일들을 겪고 나서도 현아는 엄마와 아빠에게,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빠가 스물두 살에 나를 낳고 늦게 군대를 갔대요. 휴가 때 동생을 가졌고. 군대를 갔다 오니까 자기 주변 친구들은 아직도 어린 여자들 만나고 다니는데, 자기는 집에 들어가면 애가 둘이고 늙은 마누라가 있고, 마누라는 맨날 돈 벌어오라고 하고. 자기는 어렸을 때 배워놓은 것도 없으니까 막노동이나 한 거고. 그러다 술 먹고, 술 먹고 들어오면 마누라가 바가지 긁으니까 밖으로 돌고, 그러다 바람 피고. 결국에 아빠가 엄마를 손찌검한 거예요. 바람 피고 손찌검하고 하니까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아버님 저 이렇게 못살아요’ 한 거죠. 엄마가 그렇게 다 애기하고 집을 나갔대요.”

 

“엄마는 저를 잘 키워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엄마가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매일매일 책읽어주고 엄마도 매일 책 읽고 공부하고 그랬대요.”

 

현아는 현재 사실혼 관계로 동거하면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아빠를 보며 측은함과 동질감도 느낀다.

 

“그런데, 요즘은 아빠가 그냥 불쌍해요. 아빠가 혼인신고 안하고 어떤 아줌마랑 같이 사는데, 아줌마랑 아줌마의 두 아들을 부양하려고 투잡 해가면서 돈 버느라 고생하고 있어요. 그쪽 집안이 사람도 많고 돈도 많아서 아빠가 많이 눌려 사나 봐요. 어느 날은 아빠가 새벽에 전화를 해요. 아줌마 집안 쪽 사람들이랑 있는데, 그쪽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를 비난한다고, 저보고 좀 와달라는 거예요. 그런 거 보면 그냥 되게 측은하고 안쓰럽고. 아빠가 너무 약해진 거 같고. 뭔가 저랑 비슷한 친구 같고 그래요.”

 

현아는 부모의 별 다른 도움 없이, 거의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하지만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고 느낀다.

 

“엄마가 있었다면, 지금 느끼는 것들… 뭘 하든 ‘다 내 탓인 거 같애, 내 탓인 거 같애.’ 그런 생각은 없지 않았을까요? 어릴 때 할머니가 항상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안 들으려면 너희가 잘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항상 우리는 뭔가 부족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게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다른 세계의 사람들

 

현아는 학교밖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하며 느끼는 어려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낮은 자존감,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일해야 하는 환경, 저임금과 불분명한 역할 등이 현아가 힘들다고 느끼는 점들이다. 또래의 청소년활동가들과 어울리기 어렵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

 

현아는 또래의 다른 청소년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위축되거나 자신감을 잃었다고 한다. 그들처럼 일하고 그들과 교류하기를 요구받았지만, 현아에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너무나 다른 삶의 배경과 문화 때문에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청소년활동가 애들은 잘 살고 많이 배운 애들이 많아요. 저처럼 학교를 그만뒀거나 빈곤을 격어 본 사람은 만난 적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인문학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중성? 같은걸 느꼈어요. 솔직히 인문학은 좀 살만한 사람들, 여유 있는 사람들이 여유 있기 때문에 배우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사람들이 공장가서 일하느라 바쁘지, 인문학에 대해서 무슨 관심을 가질 수 있겠어요? 제 주변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서 전혀 몰라요. 투표함에 투표지 한 장 넣을 시간에 공장가서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정치가 어떻게 굴러가고 이런 거 아무 관심도 없는 애들이 제 주변에 수두룩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만나면 항상 정치, 정치. 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하고…”

 

“걔네랑 있으면, 학벌 대학… 차이나고. 언어 선택부터 차이가 나요. 배운 애들이라서. 언어 선택부터가 달라요. 사회가 발전하고 인류가 발전하면서 어쩌고 저쩌고 이상한 어려운 얘기들을 한단 말이에요. 뭔가 너무 꾸미는 말들을 한다고 할까? 맨 처음 청소년활동가들을 접했을 때 느낀 거는 ‘다들 엄청 똑똑한 척하려고 하는 구나’, ‘되게 자기 잘난척하려고 하는구나.’ 그런 생각 들었어요. 10대 후반부터 그런 친구들 만났는데. 그때는 되게 위축이 많이 됐었죠. 그 사람들하고 같이 있으면 제가 왕따 같아요. 일단 공감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 사람들은 영화를 봐도 요소 하나하나를 다 인문학적으로 분석을 하고, 사람을 봐도 다, 그렇게 세세하게 뜯어보고 판단하고, 발끝까지. 관점이 다르다보니까 불편하고 안 맞는…”

 

화장을 즐겨하고 예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현아는 다른 또래활동가들의 외모와 패션에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현아에게는 그것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문화로 보였다.

 

“인권운동하는 애들은 꾸미지도 않고 화장도 안 해요. 대부분 머리 짧고 화장 안하고. 같이 있던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왜 인문학 운동하는 애들은 다 안감은 머리같은 거 하고 있어? 왜 다 짧은 머리 아니면 폭탄머리. 안 씻은 사람들처럼 하고 있어?’ 라고.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 같은 청소년들을 만나야 하거든요. 학교밖 청소년 애들이랑 다 같이 만나면 대부분 애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요. 일단 애들은 자기랑 비슷한 외모의 사람한테 끌리거든요.”

 

현아처럼 탈학교도 경험하고, 빈곤도 경험하고, 그래서 현아와 깊은 공감대를 가질만한 또래 활동가는 없을까?

 

예전에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또래들이 현아 주변에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스무 살 이후가 되면서 그런 친구들이 주위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같은 일을 하는 또래 활동가가 곁에 있었더라면 현아가 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일단 저 같은 사람들은 대부분 여유가 없으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쏟을 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나먹고 살기 바쁘니까. (…) 그래도 10대 때는 주변에 그런(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몇 명 있었어요. 그런데 스무 살만 돼도 다들 가난해서 돈을 벌어야 하니까… 빨리 취업해서 돈 벌어야 한다가 되더라구요. ‘니 까짓 게 무슨 세상을 바꿔?’ 그런 생각도 가지게 되고.”

 

현아의 시간을 기다리며…

 

현아는 11년 전, 내가 대안학교에서 담임교사로서 만났던 오랜 제자다. 그 시간 동안 현아의 성취와 좌절에 따라 내 삶의 만족도도 요동쳤다. 그리고 다시 바닥을 치고 있는 현아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기 어려웠다. 청소년활동가로 자리잡으려고 노력하던 현아의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 현아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벌써 3주의 시간이 지나있었다. 혹시 그 사이에, 나의 글쓰기를 쉽게 마무리 짓게 해줄만한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고.

 

하지만, 오늘도 현아는 여전히 그 상태에 있다. 여전히 출근을 하지 않고 있고, 가끔씩 사람들을 만나러 나갈 때를 제외하면 ‘대박이’라는 이름의 개와 함께 혼자 집에 머물렀다. 힘을 내려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내보기도 했다가 그냥 시간이 가는대로 내버려두기도 했다가 하면서.

 

“생활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밤에는 약 먹고 일찍 잠들려고 하고, 아침에는 일어나려고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대박이 밥도 챙겨 먹이고 하면서.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도리어 나를 걱정하고 위로한다.

 

“선생님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시던데. 감기도 빨리 나으셔야 할텐데…”

 

내가 본 현아는 재능 많고 매력적인 청년이다. 감성이 풍부하고, 언어능력도 탁월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도 빠르다. 현아 자신의 생각대로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현아가 가진 매력과 재능들은 충분히 빛나고도 남는다. 세상에 뿌리내리기 위해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어쩌면 나도 마음속으로 현아를 재촉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서 재능을 발휘하라고, 세상 앞에 똑바로 서라고. 넌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다고. 주변 사람들의 그런 마음 마음들이 현아를 쫓기게 만들었을까.

 

그냥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믿고, 말없이 지켜보고 기다려줘야지.
쫓기지 않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천천히 채워갈 수 있게.
‘충분히 쉬고, 다시 힘을 내보자.’

 

 

출처: “저, 그냥 이렇게 살고 있어요” - 일다 - http://www.ildaro.com/7661